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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역사탐방] 조선시대에도 충치가 있었을까?
본치과
* 충치의 역사



어린 시절 유난히도 가기 싫어했던 곳을 꼽으라면 누구나 병원을 꼽을 것이다. 그 중에서 치과는 단연 1순위에 들 것이다. 치과 특유의 냄새와 충치를 치료하면서 들리는 소리들은 치과를 좋아하고 싶어도 좋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듯 가기 싫어하지만 충치를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로 고마운 치과. 그런데 과연 치과가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충치를 치료했을까? 기원전 1천5백년 경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의 고문서 파피루스에도 ' 나무열매 가루와 부싯돌가루 등을 꿀에 섞어서 치약 대용으로 사용했다' 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제9대 임금 성종이 충치로 고생을 많이 했던 터라 신하가 죽으면 그 유족들에게 반드시 치아보호제 역할을 했던 유행을 하사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성종의 왕릉인 '선릉'을 탐방하면서 충치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 제9대 성종대왕의 왕릉 >





조선실록에 나올 정도로 충치를 앓고 있던 성종대왕의 왕릉은 현재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해 있다. 제위 25년간 학문을 장려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으나, 38세의 어찌보면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돌아가셨다.







< 왕릉으로 올라가는 길 >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음식 문화의 변화에 의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충치가 본격적으로 생기게 된다. 어찌보면 인류에게 가장 흔한 질병은 충치라 할 수 있다. 브리태니커 사전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엔 충치가 없었지만 신석기 시대에 조금씩 생기기 시작해 점점 늘어났다고 한다.





* 양치질의 역사



인류와 충치와의 투쟁(?)의 역사는 최소 3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500년 고대 이집트에선 열매가루와 돌가루 등을 꿀에 섞어서 이에 발랐고 300년 뒤 메소포타미아에선 백반과 박하를 손가락에 발라 이를 닦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 제주를 진설하는 곳 >


* 조선시대 양치질

그렇다면 과연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양치질을 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서 칫솔처럼 이를 닦았다고 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소금으로 이를 닦고 더운 물로 양치를 하면 이에 남은 술독이 제거 된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소금으로 이를 닦았다고 생각된다.




< 선종대왕의 계비(繼妃) - 정현왕후 릉 >


소금으로 이를 닦았다는 동의보감의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이미 이빨을 닦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이를 닦기 시작했을까? 이것은 양치질의 어원을 살펴보면 양치질의 역사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 양치질의 어원

양치질의 어원은 '양지질'로서 '양지'(=버드나무 가지)에 접미사인 '질'이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라고 한다. 고려 시대의 문헌인 계림유사에 보면 '양지(버들 양, 가지 지)'로 나타나고 그 이후의 한글 문헌에도 '양지질'로 표현되고 있다.


즉, 양지(버드나무 가지)로 이빨을 닦는 것이 고려 시대의 '이'를 청소하는 방법이라 보여진다. 우리의 조상들은 오늘날 '이쑤시개'를 쓰듯 소독이 된다고 알려진 버드나무 가지를 잘게 잘라 사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청소하는 것을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인데, 이에 대한 어원 의식이 점차로 희박해져가면서 이것을 '이'의 한자인 '치'에 연결시켜서 '양치'로 해석하여 '양치질'로 변한 것이다.








< 능을 수호하는 묘석 - 정현왕후 릉 >


* 신라시대의 양치질

그 외에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신라 시대에는 '왕의 치아'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또한 중국에서는 기원전 1500년 전의 돼지의 뼈로 만든 칫솔이 발견되기도 하며, 북방 유목계 민족의 유물 중에서도 기원전의 칫솔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도 양치질의 역사는 오래 전부터 시작 된것으로 보여진다.




< 왕릉에서 바라 본 강남의 빌딩들 >




* 근대의 양치질


이처럼 초기에는 '이쑤시개' 형태로 양치질을 하다가 1495년 중국에서 획기적인 칫솔이 발명되면서 우리나라도 쓰게 되었다. 칫솔이 없는 평민들은 손가락에 모래를 묻혀 닦았다고 전해진다. 구한말에 이르러 치분이라 하여 가루를 낸 소금이 치약으로 쓰였고, 오늘날과 같은 치약은 1955년 치약이 나오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양치질은 치아의 청결뿐만 아니라 잇몸 마사지도 함께 함으로써 잇몸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과거에 태어났다면 잇몸을 상하게 하는 '이쑤시개'로 양치질을 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과학혁명과 함께 '소닉케어'와 같은 '음파칫솔'이 나오게 되었고 치아도 관리만 잘하면 건강하게 죽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양치질의 역사로 살펴 본 역사 기획 탐방, 역사가 흐르면서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도 편리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과학 문명의 도구를 잘 활용 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